키톤 / 겁쟁이페달 / 아라키타 야스토모×선×토도 진파치
내 바로 앞자리에서 꾸준하게 졸고 있는 여자애가 있는데. 물병의 캡을 닫으면서 토도 진파치는 말문을 열었다. 마키시마 유스케와 자전거, 제 미모 이야기가 아니라면 부실에서 먼저 말을 꺼내는 일이 적은 녀석이 드물게 다른 주제로 입을 여는 것을 보고 신카이 하야토는 조금 관심이 있는 눈치로 그래서? 하고 뒷이야기를 기다렸고 아라키타 야스토모는 잠시 토도를 슬쩍 쳐다보았다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굳이 신경을 써가며 들을 얘기는 아닐 것이라. 대충 귀로만 듣고 있다가 제대로 듣고 있냐고 닦달이라도 하면 고개만 몇 번 주억거리면 그만일 일이었다. 신카이가 흥미롭게 듣고 있으니 그 닦달도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조금 푸른빛을 띤 회색 머리카락의 아이인데, 창가 자리라 그런지, 그냥 잠이 많은 건지, 볼 때마다 눈을 가볍게 감고, 입은 꼭 다물고, 되게 기분 좋은 표정으로 졸고 있단 말이지. 이어지는 토도의 말에 아라키타는 정리하고 있던 캐비닛을 닫고 토도를 쳐다보았고 신카이는 무언가 집히는 데가 있는지 토도의 말을 끊고는 물었다. ……회색 머리카락? 짧은 머리? 응, 아는 사람이야? 선이잖아. 토도는 그 이름이 익숙해서 작게 의문어린 탄성을 내뱉었고 아라키타는 가볍게 혀를 찼다. 분명 들은 적이 있었는데, 아라키타의 ……여자친ㄱ. 아니거든, 그냥 친구다 멍청아. 아, 맞아. 그랬었지. 확실히 네게 친구가 있다는 것에 놀란 적이 있던 것 같아. 토도가 저러는 것이 절대 빈정거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아라키타는 적당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너도 친구는 마키시마 한 놈이잖아. 하고 답했다. 하여간 그 자식, 밤에 좀 자라고 해도 들어먹지를 않는다니까. 성적 안 나오면 또 울상이 되어서 찡찡거릴 거면서. 아라키타는 말을 이어가며 좌석에 앉았고 토도는 말을 끊지 않으며 굉장히 흥미로운 눈으로 아라키타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피부가 뽀송뽀송하기를 바라냐고, 시끄럽게 찡찡대는 놈 억지로 재우는 법 같은 거 …… 뭘 보냐? 아아, 확실히 친구보다는 엄마의 느낌이네, 싶어서. 켁, 징그러운 소리 하지마라. 너도 마키시마한테 똑같이 해대면서. 마키는 나의 라이벌이니 말이야. 그렇지만 그 선이라는 아이는 그냥 친구일 뿐이잖아? 유독 신경을 쓴다 싶어서. 귀찮지만 신경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든다고 가만 두면 어디서 사고를 치고 있을지 모르니까. ……말하고 보니까 애완동물 같은 느낌이다만. 말을 마친 이후에도 끊임없이 따라붙는 토도의 시선에 아라키타는 눈 치우라며 작게 신경질을 내었다. 요는 자꾸 신경을 쓰게 만드니까 신경을 써주는 것뿐이라는 거잖아. 뭐, 그렇지. 그렇다면 내가 도와주는 건 어때, 아라키타. 이 몸의 미모라면 그 아이도 분명. 야. 갈 곳 없던 손을 물병을 만지작거리는 것으로 달래던 아라키타는 토도의 말에 입매를 느슨하게 올렸다. 애 가지고 놀지 마라. 그럼, 진심이면 상관없는 거야? 토도가 가는 눈으로 아라키타를 마주본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눈으로 입을 다물고 있던 아라키타가 물병을 의자에 내려놓고서는 몸을 일으켰다. 진심으로 할 생각도 없는 주제에. 말로 지는 건 더럽게도 싫어하지. 너무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거 아닌가, 아라키타. 내가 마냥 가볍다고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크나큰 오해이고, 실례야. 아라키타는 내려놓았던 물병을 토도에게 던졌다. 건네받으라는 몸짓이 아닌 명백한 던지기였다. 토도는 캐비닛을 한 번 치고 바닥으로 떨어진 물병을 내려 보았다가 시선을 올렸다. 신카이가 황급하게 둘 사이를 말리려다가 포기했다. 아닌 척 하지만 선이 걸린 문제에 아라키타는 유독 예민했다. 제가 끼어서 정리될 판이 아니었다. 야, 걘 내 거야. 어린애 같은 아라키타의 말에 토도가 되받아친다. 과거형으로, 바꿔주지. 이어지는 신경전에 가운데의 신카이만 울상을 하고 중얼거렸다. 둘이, 왜 싸우는 거야.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