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비파 / 노래의 왕자님 / 미카제 아이×현비파×미카제 아이TS
* 노래의 왕자님(우타프리) All Star 미카제 아이 루트 네타 있습니다.
* 성반전 요소 있습니다. 아이 성반전 설정은 제가 임의로 정한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안겨있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가느다란 무릎 위에 앉아있는 것에 죄책감이 일었지만 미약한 수준이었다. 168cm이기 때문에 체격이 있고 아이돌로서 활동 중이었기에 체력도 어느 정도 있고, 더군다나 본래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견딜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무릎 위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도 처음엔 무척 어색했다. 맞닿아있는 부분에서 느껴지는 체온이 집중력을 곧잘 흐트러뜨렸다. 그럼에도 거부하지 못한 것은 그녀가 원했기 때문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나를 안은 채로 내 무릎 위에 책을 올려놓고 보고 있었다. 책은 음악 관련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차이코프스키라는 음악가에 대한 논문을 실은 책이었다. 출판사가 기획을 해서 여러 학자들에게 원고를 의뢰해서 만든 책이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대학 시절에 내가 썼던 졸업 논문을 떠올렸다. 사실 논문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퀄리티였다. 그 때 다뤘던 주제는 근대 한국을 살았던 한 소설가에 대한 것이었다. 졸업 논문 지도를 해주었던 교수님은 그 소설가에 대해 다루는 것을 무척 좋게 보았지만 정작 내가 한 학기라는 짧은 기간 동안 논문을 완성하기엔 너무 방대한 인물이었다. 결국 초주검이 될 때까지 작성을 하고나서야 겨우 합격을 받아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교수님이 그 때 하신 말씀이 아직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글은 쓰지 않는 거야?”
“아, 잠깐 다른 생각 하느라고요.”
“내 책을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관련된 생각인 거야?”
“논문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관점이겠네요.”
아이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지 방금 전까지 목덜미에 느껴지던 까슬까슬한 머리카락의 감각이 사라졌다. 나는 그제야 피부가 살짝 가려워서 웃었다.
“대학 때 졸업 논문을 썼는데 정말 이런 것과는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거든요.”
“제대로 쓰지 못했나봐?”
“엉망이었어요. 논문을 써서 가져갈 때마다 교수님이 한숨을 뱉으셨거든요.”
“논문이라는 건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도 여러 모로 달라질 수 있지 않아?”
“일단 교수님께서 감독하고 1차 통과를 시키는 거니까 어쩔 수 없이 그 교수님께 맞추는 수밖에 없죠.”
“흐응.”
오른쪽 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조금 못마땅한 기운을 띄고 있었다. 사실 졸업 논문을 합격시키는 것에 대해 아이미가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가장 처음에 논문을 감독하는 사람이 딱 한 명이고, 그 기준에서 합격이 된 후에야 논문 심사에 들어가게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학생은 많은데 교수는 인원이 얼마 되지 않으니 당연히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지만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 때 그 교수님의 말씀이 자꾸 떠오른 탓이었다. 내가 글을 썼다 지웠다가 반복하고 있으려니 아이미가 책을 덮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지 내 허리를 그대로 감싸 안아서 일어났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을 때, 현관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높은 톤의 소년 목소리는 곧 의아함을 띄었다.
“두 사람 뭐 하는 거야?”
“비파가 소설에 집중을 못하는 것 같아서 한 번 기분을 전환시켜줬다가 내려놓으려는 거야.”
“그 상태만 보면 비파를 강제로 들어 올린 것 같은데. 비파도 허리가 짓눌려서 아파하는 것 같아.”
“걱정할 필요 없어. 이제 내려놓을 거야.”
“저기,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내려놓으면 안 될까요?”
“미안.”
아이미가 천천히 나를 내려놓았다. 발이 땅에 닿자마자 아이미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가 아이를 보았다. 양갈래로 묶어 내린 아이미와는 달리 왼쪽 머리를 모아서 묶어 올린 아이가 겉옷을 벗고 있었다.
“오늘 스케줄이 많이 길어졌나 보네요.”
“콰르텟 나잇 화보 촬영이 예상보다 45분 21초 길어졌어.”
“뭐, 덕분에 난 비파와 둘이서 45분 21초 더 같이 있을 수 있었어. 고마워, 아이.”
“아이미, 짓궂게 말하지 말아요. 그렇게 말하면-.”
아이가 비파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정수리 부근에 얼굴을 묻더니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아까 하지 못했던 말을 이어서 했다.
“이렇게 된다고요.”
“어쩔 수 없잖아? 약속했는걸.”
“그래도요.”
“오늘은 내가 45분 21초 더 비파랑 혼자 접촉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45분 21초에 맞춰서 아이와도 같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물론 어느 쪽이든 내겐 그저 행복한 고민일 뿐이었지만 아이미의 표정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평소라면 그녀도 내 옆에 앉아있었겠지만 오늘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이 있기 위한 약속 때문에 옆에 오지 못했다. 아이미는 불퉁한 얼굴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45분 21초 후에는 나도 비파한테 접촉할 거니까.”
“알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그 후에는 같이 있게 될 거야.”
그제야 아이미의 입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시간을 재는 것인지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뜬 그녀가 작업을 위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는 이제 내 오른쪽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나는 팔을 들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고 싶었어, 비파.”
“저도 보고 싶었어요.”
“아이미가 오늘 오프인 게 얼마나 부러웠는지 알아?”
“전화하고 싶은 걸 꾹 참고 스케줄 잘 마치고 왔잖아요? 이제 같이 있어요.”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머리카락이 어깨 끝에 닿았다, 나는 슬며시 웃으며 내 목을 감싼 그의 팔을 토닥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