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oruen / 던전앤파이터 / 데스페라도×에소루엔 로시스×제너럴

류아키☆륭키 2016. 9. 17. 17:51

 

 

 

 

 

 

 

 

 

 

 

 

정신을 차려보니 첫사랑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돌아보면 이제까지 살아온 약 20년간의 세월은 전쟁 그 자체가 따로 없었다. 걷고 말을 할 수 있을 때 쯤 이미 소년병으로 황도군에 들어와, 살상기술을 배우고, 철이 들었을 무렵에는 진짜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다. 당장 내일 자신이, 그리고 내 옆의 동료가 살아있을지 어떨지 모르는 환경. 미래에 대한 꿈을 꾼다던가, 누군가를 생각하는 것은 사치 중에서도 사치가 아닐 수 없었다. 생각해야 할 건 그저 적을 죽이고, 자신은 살아남는 법. 동료조차 챙겨줄 여유가 없는, 피와 탄환의 세계.

 

있잖아, 우리 중에서 살아서 어른이 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언젠가 물었던 동료의 말에 나는 빈말로라도 너랑 나 정도는 남을 거야라고 하지 못했다. 나는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고, 누군가의 목숨을 지켜줄 자신도 없었으니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나는 10살 쯤 부터는 쭉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도, 유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신중히 여기면서 살았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내가 입은 군복은 바뀌어있었고, 날 부르는 호칭도 달라져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전장과 멀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구르는 일반 병사와 위에서 작전을 세우고 뒤에서 지휘하는 지휘관은 큰 차이가 있었다.

, 그래도 결국 죽음과 멀지 않다는 건 똑같을 지도 몰랐지만.

 

제너럴은 참 열심히 뛰어다니네요

?”

아니, 보통은 그 정도 계급장이면 뒤에서 이래라 저래라 시키기만 하지 않나 해서? 특수부대라 다른 거예요? 아니면 그냥 제너럴이 성실하다던가?”

 

그건 데스페라도와 루엔이 무법지대에서 건너와 합류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다. 겐트 외각에서의 전투 후, 팔에 박혔던 류탄의 파편을 제거하고 나온 나는 그대로 다음 전투를 위한 회의를 하러 가려다가 루엔에게 저런 소리를 들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의 입장에선 이해가 안 가겠지. 나는 그 질문에 악의가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웃으며 대답을 얼버무릴 수 있었다. ‘양쪽 다라고 해 둘게요. 가만히 앉아만 있는 건, 성에 차지 않아서내 대답에 그녀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웃었고, 나는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그녀가 부럽다고 느끼기 까지 했다.

무법지대에 대한 것은 좋은 기억이 없다. 원래 편견이 만연하는 사회이긴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카르텔과의 긴 전투. 무법지대에서 온 그들이 몰고 다는 먼지와 모래의 냄새. 그것은 죽음에 가장 가까운 냄새라 생각했다. 피와 고름의 악취보다도, 화약 냄새보다도, 훨씬 죽음에 가까운.

 

어떻게 그런 곳에서 살았는데도

 

에소루엔 로시스, 무법지대의 악몽. 데스페라도와 함께 카르텔을 처리하고 다니는 카르텔 사냥꾼.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던가. 소문에 걸맞게 무자비하다거나 거친 사람이라는 인상은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죽음에 땅에서 왔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빛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죽음에 대한 공포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람 같은.

 

익숙한 걸까?’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그건 이미 너무 익숙해 져서 제 것이 되어버린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마치 마비된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죽음이라는 공포에서 마비된 것처럼 보였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무섭기도 했다. 내가 저렇게 된다면, 과연,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되어.

 

그래, 생각 해 보면 어쩌면 처음부터 나는 그녀가 나와 다른 걸 알고 있었기에, 두려워하면서도 반짝거린다고, 상반 된 생각을 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마도 세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동문 쪽에서 일어난 교전 때.

 

계속되는 전투로 부상병만 늘어가던 시기, 적은 수의 인원만으로 급히 동문으로 향한 나는 무리의 리더인 슈뢰드를 처리하는 것엔 성공했지만 퇴로가 막혀 엄폐물 뒤에 숨어있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다친 곳은 없지만, 전에 입은 상처가 터져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어떻게든 지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할 텐데, 주변에 들리는 것은 카르텔 병사의 목소리 뿐. 아군은 아직 이곳까지 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먼저 뛰어드는 게 아니었나

 

무모한 짓을 했다.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눈앞에서 도망가는 적장을 두고, 어떻게 물러서는가. 물론 일반 병사도 아니고 다른 사람을 이끌어야 한 지휘관이 이러는 건 옳지 못하지. 알고 있었다. 블랙로즈도 두고 여기 온 내가 나쁘다는 건 잘 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매일매일 죽을 각오를 하고 살아가는 그 소년병 시절과 변한 게 없어서,

 

!’

 

근처에서 총성이 울렸다. 아군이 온 건가? 아니면, 이쪽을 눈치 챈 걸지도. 최대한 숨죽이고 엄폐물 너머로 귀를 기울인 나는 들려오는 비명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주변은 카르텔뿐이니까, 아군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가? 잔뜩 긴장한 채 상황을 살피던 나는 내 옆에서 튀어나오는 그림자에 반사적으로 총구를 겨누었다.

 

, 찾았다

 

자신을 향하고 있는 권총이 무섭지도 않은 걸까.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사실 나는 좀 혼란스러웠다. 지금 이 전장에는 그녀 말고도 많은 아군이 있고, 그녀의 연인이자 또 다른 조력자인 데스페라도도 있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는 혼자서, 여기에 와있는 것인가. 설마 다른 아군들을 두고 혼자 온 거라면

 

혼자 먼저 가면 어떡해요? 슈뢰드는요?”

사살했습니다. 로시스 양이야 말로, 혼자 오신 겁니까?”

, 걱정되어서 그만. 데스페라도도 두고 와버렸지 뭐에요?”

 

웃을 일이 아닌 것 같은데도 그녀는 계속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역시, 죽음이나 위험에 무감각해져 이런 건가. 그 당시의 나는 정말로 그렇게 밖에 생각 할 수 없었다.

손을 잡고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보자 여기저기에 카르텔 병사들의 시신이 보였다. 그러니까 방금까지 떠들던 저 잡병들을, 그녀는 혼자서 다 처리하고 내게 왔다는 거겠지? 몇 번 곱씹어도 악몽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실력이었다. 정말로, 이건 적의 입장에서는 악몽일 수밖에 없겠으니까.

 

, 일단 나갈까요. 다들 귀환한 모양이고 저랑 제너럴만 가면 될 거예요

? 다들 돌아갔나요?”

젤딘이 퇴각 명령을 내렸어요. 아마 제너럴이 슈뢰드를 놓치지 않을 걸 알고서 내린 명령이겠죠. , 데스페라도도 아마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 사실 몰래 온 거거든요

?”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내가 슈뢰드를 추적하러 간 사이 젤딘은 승리를 확신하고 이만 퇴각하라 명령했고, 그녀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고 혼자 나를 찾으러 왔다고 했다. 블랙로즈도 나를 찾으러 갔다고 하지만 루엔과는 길이 엇갈리고 말았고, 데스페라도는 그녀가 나를 찾으러 가버린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굳이 그러실 필요는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블랙로즈도 있는데

하지만 제너럴은 언제나 무리하는 것처럼 보여서, 마음이 불편하거든요.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어요. 제멋대로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요. 전 이런 사람이니까

하아

 

어찌되었든 도움을 받은 것은 나다.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겠지. 나는 정중하게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다친 팔을 살폈다. 이 정도면 돌아갈 때 까지는 무슨 일이 생겨도 문제없겠지, 난 그렇게 판단했지만 아무래도 그녀 눈에는 아닌 모양이었다.

 

어라, . 덧났어요?”

, . 괜찮습니다. 돌아가서 치료하면 됩니다

안 괜찮다고요 보통은?! 곪으면 큰일인데역시 와 보길 잘했네요! 가만히 있어 봐요!”

아니전 정말로

 

죽을 정도의 상처만 아니면 뭐든 괜찮은데. 왜 이렇게 걱정하는 걸까. 정작 본인은 죽음의 땅에서, 수많은 죽음을 몰고 다니는 무법자면서. 아군이 다친 건, 신경 쓰이는 건가?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 말을 더듬던 나는 내 팔을 살펴보던 눈빛이 갑자기 변하는 것을 캐치했다.

 

로시스 양?”

숙여요!”

?”

 

내가 되묻는 사이, 그녀는 날 거칠게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그리고 동시에 쾅. 굉음을 내며 무너지는 엄폐물. 과연, 카르텔의 트랩인가. 나는 얼른 후퇴해야 한다고 그녀에게 말하려 했지만, 그녀의 행동력은 내 생각 이상이었다.

 

제너럴은 가만히 있어요! 상처 덧나면 저도 혼나니까!”

? 아니, 그럴 수는

서둘러요! 아마 뒤늦게 지원군이 온 거 같으니까!”

 

어디까지나 자신들은 협력하러 왔을 뿐, 황도군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그녀는 내 말을 도저히 들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긴, 따지고 보면 나도 명령할 권리는 없지. 부탁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게다가 상처가 덧나버린 건 명백한 내 잘못. 어쩐지 더 말하기도 민망해진 난 입을 꾹 다물고 그녀를 따라갔다.

 

거 한 박자 늦은 주제에 엄청 끌고 왔네!”

 

. . 꽤 멀어 보이는 거리의 적들도 거침없이 쏘며 전진하는 그녀에겐 긴장이라곤 없었다. 전장에 서있는 사람 중, 저런 얼굴을 한 사람은 없었는데. 자신이 죽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지 걸음에 망설임이 없는 루엔은 그 와중에도 내가 걱정되는지 간헐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로시스 양, 전 신경 쓰지 말고 좀 더 전투에 집중을 하는 게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보다는 제너럴 본인을 좀 더 신경 쓰세요. 다쳤잖아요?”

당신은 죽는 게 무섭지 않나요?”

?”

 

이런 상황에서 묻기엔 적절치 않을지 모른다. 당장 까딱하면 진짜 죽을 수도 있는 전장 한가운데서, 대뜸 죽는 게 안 무섭냐고 묻는다니. 이 자리에 블래스터가 있었다면 그거, 완전히 사망 플래그 아냐?’ 라고 태클을 걸었겠지.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내 말을 흘러 넘기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해 주었다. 물론.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기면서 말이다.

 

글쎄요, 무서운가? 잘 모르겠네요. 어차피 언젠가는 죽는데. 무서워해도 어쩔 수 없잖아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 , 하지만 막 산다던가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는 그런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이렇게는 안 살죠

이렇게?”

 

그녀가 말하는 것은 정말이지 하나도 이해 할 수가 없다. 이렇게, 라니. 어떤 삶의 방식을 말하는 거지? 이렇게 죽음의 공포를 잊고, 무작정 적을 사살하는 삶? 내 손을 꽉 잡고 막사로 돌아온 그녀는 혼란스러워하는 나와 눈을 맞추고 활짝 웃어보였다.

 

. 죽이지 않으면 죽는 곳이니까요, 무법지대는. 나는 살아남기 위해서 싸우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이 마치 보석처럼 빛나게 보였던 것은 내 착각이었을까.

제비꽃과 같은 색의 눈동자. 그 안에 있는 것은 생명 그 자체. 내가 두려워 한 것, 내가 부러워 한 것. 그녀를 빛나게 하는 것은 단순히 죽음에 대한 공포조차도 마비될 정도의 강함이 아니었다. 수많은 죽음 앞에서 체념한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살기위해, 자유롭기 위해 싸우고 있으니까. 이토록 눈부시고, 아름답고,

 

, 제 삶의 방식이 다 옳다는 건 아니니 제너럴이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서운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입을 다문 그녀는 나를 의무병에게 넘겨주고 그대로 데스페라도에게 가버렸었다. ‘아니요, 조금은 알 거 같아요그렇게 대답하지 못한 나는 의무병에 손에 끌려가 치료를 받고 블랙 로즈와 만나 잔소리를 듣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떠올라 괴로웠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사랑에 빠져있었고, 나의 첫사랑은 이미 누군가의 연인이었다. ‘좋아해서는 안 된다그런 생각을 해 볼 여유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사랑에 빠진 순간은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막을 수 없었고, 그게 사랑인 것을 몰랐기에 감정을 억누르는 것도 할 수 없었다.

살기위해서 싸우는, 자유로운 그녀에게는 어차피 나같이 언제 죽어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순교자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자신과 같은, 자유롭고 제멋대로인 데스페라도 쪽이 훨씬 어울리지. 그렇게 달래보려고 해도 나는 발작적으로 그 빛나는 눈동자를 떠올리고, 설레어하고, 한숨 쉬고,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고.

결국엔 내가 그녀의 옆에 없더라도, 지켜볼 수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