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 회색도시2+GANGSTA. / 정은창×시리우스×니콜라스 브라운
* 에루가스툴룸은 존재하지만 세레브와 트와일라잇은 없는 세계
* 서울에 올라오긴 했으나 선진화파에 다시 합류하지는 못한 정은창
* 워레스 아르칸젤로를 만나지 못한 니콜라스 브라운
* 가정폭력이 있었음을 내포한 내용 有
* 과격한 단어 有
우연히, 우연히, 우연히
그러나 반드시
***
“잘 지냈냐.”
문을 열었더니 그가 서있었다. 늘 그렇듯이 어떤 언질을 주지 않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것은 평소와 달리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의 어깨너머로 그보다 작은 낯선 남자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문 열렸으면 빨리 들어가라, 좀.”
“인사부터 하자. 인사성 부족한 새, 자식아.”
뒤의 낯선 남자가 뭐라고 하자 고개를 살짝 돌려 대답하던 그는 저를 흘긋 보고는 단어 하나를 바꾸었다. 똑같다. 그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들어간다.”
일단은 두 사람을 집에 들이기로 했다. 애초에 이 집의 출처는 그다.
집안에 들어온 그는 우선 냉장고를 살폈다. 보이지는 않지만 짧게 혀를 찬 듯싶다. 괜히 머쓱해져 목덜미를 긁적였다. 평소에도 조용한 집이지만 지금 집안 가득히 채워진 공기는 긴장되고 불편했다.
“야, 씨. 소개부터 좀 해주던가.”
그건 낯선 남자도 마찬가지였던지 그에게 불만을 담아 뭐라고 짧게 투덜거렸다. 늘 그렇듯 그는 괘념치 않다는 듯이 냉장고 문을 닫고 집을 훑었다.
“도,”
자연스럽게 몸을 이쪽으로 튼 그의 표정이 날카로웠다.
“어, 그러니까. 시리우스…?”
뭐라고 웅얼거려서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마지막 단어는 그의 이름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싸한 표정을 풀며 턱을 살짝 당겼다.
“저건 정은창. 혼자 버려두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데려왔다.”
아까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 틀림없는 탄산수를 저에게 건네며 짧게 설명했다. 낯선 남자를 의식해서인지 손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발음은 언제나와 같이 그렸다.
“이쪽은 니코. 니콜라스 브라운. 이 몸이 후원 중인 꼬마.”
읽을 수는 있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다. 그건 낯선 남자도 비슷한 듯 했다.
“너, 뭐라고 설명했어.”
“궁금하면 공부하던가.”
알 수 없는 말이 불쾌하다. 그렇다고 소리는 내고 싶지 않아서 가만 바라만 보았다.
“이 몸과 같은 한국인.”
"Korea. Republic of Korea. ROK."
그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
제 방 바닥에는 웬 낯선 남자가 뒹굴고 있었다. 눈을 몇 번 끔뻑이다가 어제 그가 이 남자와 함께 집을 방문했음을 기억해냈다. 이건 둘 다 손님이니 손님방에서 자겠다고 하는 걸 처음 보는 낯선 남자와 함께 뜯어 말려서 낸 결과다. 목이 건조하다. 그의 정체를 그 자는 언제부터 알았을까.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집을 나선 후였다. 식탁에 따뜻한 아침이 차려져 있다. 생소한 풍경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의자에 앉았다가 제 방 바닥에서 뒹굴고 있을 남자를 떠올렸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밥을 먹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곧 익숙한 필체의 메모를 보고 숟가락을 들었다.
‘먼저 간다. 그 놈은 신경 끄고. 잘 다녀와.’
아무 것도 아니었던, 기계적인 아침이 오늘따라 눈부시다.
***
돌아왔을 때 낯선 남자는 제 작업실에 있었다.
“어, 구경. 구경만 했어.”
못할 짓이라도 한 건지 이 낯선 남자는 안 그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정황상 변명일 것이다. 다행히 그건 보지 못한 듯싶다. 그래도 불쾌한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낯선 남자는 말이 통하지 않음을 기억해내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빠르게 작업실을 나갔다. 묘하게 깔끔하지가 않다.
불편한 공기가 집안을 무겁게 눌렀다. 문을 잠그고 서랍을 열어 음표의 나열을 그리다 만 오선보를 꺼냈다.
***
그는 저녁이 되어서 돌아왔다.
“야, 여기에 혼자 버려두고 나가냐.”
“일.”
낯선 남자는 그가 문을 열자마자 얼굴이 펴지면서 뭐라고 시비를 걸었다. 익숙한 일인지 시큰둥하게 대답한 그는 제 머리에 손을 얹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다녀왔다.”
낯선 남자에게 하는 것과 다른 행동.
“온도차 더럽게 심하네. 치사한 거 아니냐.”
“아무 거나 사왔다. 먼저 집어라.”
“씹냐! 나는?!”
“봐도 모르면서. 아무거나 쑤셔 넣어.”
의미는 모르지만 부드러운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가까워 보였다. 무심하게 내던지면서도 그의 입 꼬리는 살짝 말려 올라가있었다.
투닥거림은 밥을 먹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씹어 넘긴 음식물이 목에 걸린 것 같다. 그에게 소리를 전하고 싶어졌다.
“드ㄹ어주, 세요.”
낯선 남자의 놀란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도 불쾌하지만 이 시간이 계속되는 게 더 싫다. 그는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가 입 꼬리를 당겨 멋들어지게 웃었다.
“연주회 초대 감사합니다. 연주자님.”
어느 쪽이 어떤 의미일까.
***
“혹시나 했는데. 역시 음악 하는 애였네.”
“그렇지. 첼리스트.”
“네가 음악 하는 애 뒤를 봐줄 줄은 몰랐는데.”
고양감이 가득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저 낯선 남자가 하는 말은 어떻게 그에게 바로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걸까.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다.
“원래 귀가 안 들렸던 건가?”
“그래.”
“대단하네.”
“별 것 아닌 일이야.”
그의 얼굴이 싸하게 굳었다.
저에 대한 얘기다. 낯선 남자는 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첼로를 잡은 저에게 감탄했다. 그게 보통이겠지만 그는 다르다. 시리우스는 어떤 특별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
남자는 불쾌하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다가 저를 보았는지 표정을 풀고 옅은 웃음을 지어주었다. 이윽고 남자는 몸을 움직여 이쪽에 자신의 등만 보이도록 자리를 다시 잡았다. 남자와 그 앞에 있던 사람의 얼굴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몸을 움직이던 순간 보인 남자의 얼굴은 싸늘했다. 앉아있던 자리에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몇 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눈을 슬쩍 떴다. 형광등에 눈이 부셔 조금 비비려고 들었던 손이 누군가에게 잡혔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낯설지는 않았다. 눈을 몇 번 끔뻑였다.
“다시 만났구나, 꼬마야.”
남자가 멋진 미소를 지으며 쪼그려 앉아 저와 눈높이를 같이 하고 있었다. 그 전과 같이 느리고 정확한 발음을 그리면서. 다시 한 번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남자는 여러 서류를 작성한 후에 제 손을 잡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를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라는 건 들 것에 실릴 때부터 알았다. 그 자리는 아무 말 않고 있는 옆에서 걷고 있는 이 남자가 대신 맡으려고 한다는 것은 그가 저를 찾으러 건물에 급하게 들어선 순간 깨달았다. 이번으로 겨우 세 번 만났을 뿐인데도 그는 책임을 지려고 한다.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옆모습을 슬쩍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제가 돌아보기를 기다리며 저를 보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게 있니.”
이번에도 한쪽 손이 자유롭지 못해서 그는 입모양에 보통보다 더 신경을 썼다.
“체ㄹ로.”
대뜸 물어온 말에 저는 그렇게 대답했다. 사실 대답하고 나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것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도 평생 알지 못할 제가 감히 그것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비용도 만만찮을 것이다.
“그래.”
쉽게 내뱉은 말에 긍정도 쉽게 돌아왔다.
“네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야. 니콜라스.”
처음으로 이름이 불렸다.
***
시리우스는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불편하면 말해.”
앞뒤는 다 잘라먹었지만 낯선 남자의 얘기일 것이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둘이서 같은 방에서 잘 테니까. 신경을 안 쓰는 건 애초부터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남자에게는 거리를 좀 뒀으면 좋겠다.
딱히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닌지 시리우스는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 비워진 잔을 스스로 채웠다. 그 탓에 뭐라고 움직이는 입을 읽지 못했다.
“무심하다, 라.”
뭐라고 했을까. 그저 혼잣말이었을까.
“첼로가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겠지.”
낯선 남자가 했던 말이 그에게 많은 생각을 불어넣은 듯했다. 혼잣말처럼 내뱉은 말이지만 저건 분명한 물음이었다. 이유를 물어본 것은 처음이다.
늘 멀고 멋있게만 보이던 당신이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동시에 더 멀어졌다.
***
“…첼로?”
“?”
남자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음에도 귀신 같이 알아차리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리를 낸 것도 아니었다. 조금 놀라서 눈을 크게 깜빡이니 옅은 웃음을 지으며 오른쪽 눈을 살짝 감는다. 버릇 같은 것일까.
“아아, 저기. 첼로연주 소리 나오고 있어.”
느리지만 크고 정확하게 발음을 그리는 입과 그에 맞춰 유려하게 의사를 전달하는 손.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에게 들킬까 한순간 오른쪽 검지가 가리켰던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으니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몰래 눈을 질끈 감고 어금니도 악 물었다.
어떤 반응도 오지 않는다. 슬쩍 눈을 뜨니 남자는 그런 저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른손에 든 수첩에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만년필로 선을 죽죽 긋고 있었다. 펜을 움직일 뿐인데 묘하게 눈을 사로잡는다. 그러고 보니 왼손을 쓰는 건 처음 본다. 양손잡이인 걸까. 손의 움직임이 멎었다. 뭔가 싶어 고개를 드니 남자가 시선을 맞추고 부드럽게 웃는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제가 다시 돌아보기를 기다렸다.
“이게 첼로. 첼로는 악기. 그 중에서 현악기.”
“여기 줄이 있지? 그래서 현악기.”
수첩을 한 손에 쥐고 있는 탓에 남자는 아까보다 더 느리고 정확히 발음을 그렸다.
“체, 체에로?”
“그래, 첼로. 낮은 음을 연주하지.”
“철자는”
violoncello
고풍스럽고 어른스럽다. 어딘가 묘하게 남자를 닮았다. 흘려 적는 건 버릇이었는지 남자의 얼굴이 잠시 찡그려졌다.
“?”
글씨체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이제야 눈치 챘다. 발음과 철자가 다르다. 의아함에 눈만 끔뻑이고 있으니 남자가 웃는다.
“첼로는 비올론첼로의 약칭.”
violoncello = cello
남자의 입이 다물어지자마자 수첩으로 서둘러 눈을 돌렸다. 목구멍이 간지럽다. 애꿎은 수첩 속의 글자만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새하얀 왼손이 다시 움직이더니 조심스럽게 그 장을 찢었다. 남자는 수첩에서 뜯어낸 종이를 제 손에 쥐어주었다. 고개도 못 들고 그것만 눈에 담고 있으니 오해를 한 듯싶다.
“그럼, 다음에 인연이 닿으면 보자.”
남자는 끝까지 느리고 정확하게 발음을 그렸다. 멋있게 웃으면서 저의 머리를 한 번 거칠게 쓰다듬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남자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몸을 돌려서 멀어졌다. 단 한 번도 발걸음이 느려지거나 멈춰지지도 않았고 뒤로 돌아보지도 않았다. 단지 오른손을 들어 대충 몇 번 흔들어주었다.
처음으로 소리라는 것이 궁금해졌다.
***
당신. 시리우스, 당신.
내 어두운 마음에 뜬 별 하나, 시리우스.
당신은 내게 듣고 싶은 음악이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웃었다. 대답은 필요 없다. 시리우스, 당신은 분명 알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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