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 명탐정 코난 / 아카이 슈이치×하나×아무로 토오루
순흑의 악몽 스포일러 주의
간신히 관람차에서 나와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안간힘을 쓰며 걷는데, 부축해주는 사람이 둘이다. 서로 제 차에 태워 데려다 주려는 사람도 두 명이고. 내가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 하고 있을 때는 눈에서 불꽃이라도 나오는 줄 알았다. 기싸움은 눈으로 하고 내 손과 손목을 쥔 팔에는 전혀 힘을 주지 않는 게 참 대단하다 싶었다. 아카이씨도, 아무로씨도 어쩜 이렇게 쓸데없는 배려를 하는지. 다 큰 어른들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특히 아카이씨, 평소에 내가 얼마나 중요하냐고 물어봐도 대답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나를 소중하고 중요하게 취급할 때의 기분이란…. 분명 평소에 무관심하다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나를 챙겨주니 열이 받아하는 짓이겠지만, 나는 배신을 당한 기분이다. 관람차에서 나와 자리에 앉기까지의 여정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정신적인 피로가 훅 몰려왔다. 마치 가시밭길을 걷고,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
구급대원들이 부상자들을 병원에 보내는 현장에서는 간단한 응급처치도 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 근처에 줄을 지어 앉은 사람들을 따라 아카이씨와 아무로씨도 함께 나란히 앉은 것까지는 나도 좋았다. 관람차에서 무슨 일을 벌인 건지는 몰라도 건물 잔해에 다친 흔적이 보이지 않는 두 사람에게 먼저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지만, 괜찮다며 오히려 사양하고 나를 먼저 치료받게 하였다. 무릎에 까진 상처나, 얼굴에 조금 긁힌 상처가 전부인 나는 금방 끝나고 다시 두 사람에게 돌아왔다.
“용케도 그만큼 다쳤군.”
“생각보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아카이씨는 한쪽 다리를 허벅지에 올린 채로 담배를 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무로씨는 평범하게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마치 나를 위한 공간인 것처럼 한 사람이 앉을자리가 비워져 있었다. 담배 좀 끌 수 없냐는 작은 말다툼을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가만 듣다가, 빈자리에 털썩 앉았다. 아카이씨는 그 순간에 담배를 발로 비벼 불을 끈다. 두 사람의 분위기는 쉬이 말을 걸 상황이 아닌지라 자연스럽게 침묵이 형성되었다. 이 넓고 탁 트인 공간에 덩그러니 벤치에 앉은 세 명…. 모두 함께 같이 돌아가는 건 둘째 치더라도, 어떻게 해야 다툼 없이 평화롭게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가거나, 택시를 타는 걸까. 하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택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같이 온 란이나 소노코에게 연락을 해볼까 했지만, 걔네도 정신이 없을 것 같고.
결국 눈치를 보다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바로 바짝 붙어서 지켜주려는 것처럼 구는 아무로씨와, 조금 떨어져 지켜보는 것처럼 구는 아카이씨. 익숙한 아카이씨의 차량에 붙어서 열어달라는 시늉을 하면, 아카이씨는 느긋하게 문을 열고 나를 뒷좌석에 태웠다. 바로 운전석으로 향할 줄 알았는데 예상을 깨고 아무로씨와 이야기를 나눈다. 별로 듣고 싶지 않은 내용이라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틀었다. 원래 같았으면 라디오를 틀었겠지만, 지금은 조수석에 앉아있는 게 아니라 거리가 멀다. 어디를 틀어도 수족관 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할 테니 듣고 싶지도 않았고. 노래 한 곡이 다 끝날 즘에 아카이씨는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았다. 조수석에는 자연스럽게 아무로씨가 탑승했고.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는 두 사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두 분이서 데려다주시는 거예요?”
“그렇게 됐다.”
“불편하진 않죠?”
더 대답하기 귀찮았다. 생각할 것이 많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하는지 엿들어야 했다. 어린애 앞에서 못 할 말다툼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결과물이 되었다. 일시적인 평화조약을 맺은 것처럼 보여 눈을 꾹 감고 조금만 잔다고 투정을 부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외투가 내 상체에 덮였다. 10분 정도 지나자, 내가 잠이 들었다고 판단했는지 아까 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을 달렸다. 어떤 이유에서든 내 차를 골랐으니 내가 데려다준다는 말. 아는 차가 그거밖에 없어서 고른 것임을 모르는 두 사람이 아니라 유치하게만 들린다. 그 유치함이 싫지 않은 이유는 없던 관심을 갑자기 받아서겠지.
차는 금방 베이커가로 온 것 같았다. 잠깐 자는 척한다는 게 정말 잠에 빠져들어서, 눈을 떴을 때는 아무로씨가 겉옷을 치우고 나를 조심스럽게 흔들어 깨웠다. 눈을 부비고 아카이씨의 차 안에서 빠져나와 아스팔트 위를 두 발로 착지했다. 근육의 긴장은 아직도 풀리지 않아서 조금 후들거린다. 도착한 곳은 우리 집 아파트 바로 앞. 무의식 중에 아카이씨를 쳐다보자, 어김없이 손을 내밀었다. 아카이씨의 손을 가볍게 쥐고 아무로씨를 향해 돌아본다. 빈 나머지 손을 흔들려고 했지만, 아무로씨도 가볍게 잡고는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다음에 보도록 하죠.”
“…네. 조심히 가세요.”
그렇게 아무로씨를 보내고 아카이씨와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도중 아무로씨 이야기를 할 기회도 없이 7층에 멈춘다.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는 시간이라 그런가. 평소라면 5분은 걸렸을 법한 거리가 유난히도 짧게 느껴졌다. 컵라면이 익을 시간으로 확 줄은 듯해 헤어짐이 아쉽기만 하다. 우리 집인 706호 바로 앞에서 아카이씨는 손을 놓았다. 마른세수를 하고는 나를 내려다보는 눈길은 평소에는 잘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다. 눈을 깜빡이며 한쪽 눈이라도 최대한 보려 고개를 들은 내가 무색하게, 아카이씨는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주 약한 힘으로 서로의 이마를 맞대기를 삼십 초. 달싹이는 내 입술이 결국 먼저 사고를 쳤다. 아카이 씨의 입술에 가볍게 부딪친 입술은 곧 떨어졌고, 나는 도어록 비밀번호를 세게 누르며 집 문을 열었다.
“다음에 봐요.”
“… 얼른 가서 자라.”
내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온전히 본 아카이씨는 걸음을 옮겼다.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아카이씨가 차에 시동을 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붉어진 얼굴을 베개에 묻으려는 핑계를 적당히 생각하며 핸드폰을 꼭 쥐었다. 쿠도네 집으로 가면 어김없이 전화가 걸려올 것이다. 아무로씨는 헤어지자마자 문자를 보냈는지 잘 들어갔어요? 라며 아직 읽지 않은 문자가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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